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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영화사회학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기획이사로 활동 중이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김경욱의 시네마크리티크」를 연재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영화와 함께 한 시간』(2022) 등이 있다.
- <보통의 가족>,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해”2024-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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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가족>,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해”
김경욱(영화평론가)
-이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허진호 감독이 연출한 <보통의 가족>에는 두 형제가 등장한다. 형 재완(설경구)은 변호사이고, 동생 재규(장동건)는 의사이다. 재완이 높은 수임료를 받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변호하는 인물인 반면, 재규는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환자를 살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다. 두 형제의 차이는 영화 도입부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의 이후 상황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재완은 교통사고의 가해자인 형철을 변호하고, 재규는 피해자인 나래를 치료하게 된 것이다. 운전하다 나래의 아빠와 다투게 된 형철은 고의로 자신의 스포츠카를 질주해 나래 아빠를 죽게 하고 어린 나래를 중태에 빠트린 포악한 인간이다. 그럼에도 재완은 법 기술을 이용해 의뢰인인 형철이 나래 아빠의 위협 때문에 공포에 질려 순간적으로 운전을 제어 못했다며 과실치사가 되도록 변호한다. 재규는 나래의 수술비가 입금되지 않았는데도 우선 나래를 살리는 데 집중한다.
재완은 넓은 평수의 호화 아파트에 거주하며 젊고 아름다운 아내 지수(수현)와 갓난아기 그리고 죽은 아내 사이에 낳은 딸 혜윤과 풍요롭게 살아간다. 혜윤은 아빠를 닮아 공부도 잘하고 약삭빠르고 처세에 능하다. 반면, 재규는 넓지 않은 아파트에서 치매 걸린 어머니와 연상의 아내 연경(김희애) 그리고 아들 시호와 살아간다. 시호는 내성적인 성격에 성적도 별로인데다 학폭에 시달리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는 가장 소득이 높은 직종으로 손꼽히지만, 재규는 의료상황이 열악한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 봉사활동을 다니며 오로지 환자 생각만 하다 부유한 삶과는 멀어진 상태다.
형과 동생의 차이에서, 재완은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은데 재규 부부는 미묘한 시기심을 드러낸다. 재완 부부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 자리를 마련할 때, 재규 부부는 재력의 차이를 실감하며 냉소를 짓는다. 연경은 지수의 젊음과 미모에 열등감을 느끼는지 틈만 나면 하대하려 한다. 형제 부부 사이의 차이와 갈등이 내러티브의 중심인가 싶을 때, 고등학생 아이들이 끔찍한 사건을 저지른다. 술에 취한 혜윤과 시호가 노숙자를 폭행해 혼수상태에 빠뜨리고, 그 장면이 CCTV에 찍혀 뉴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재완과 재규 부부는 그 영상을 보자마자 아이들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채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사건의 단서를 찾아내지 못한 것 같다.
노숙자는 사망하고, 재완과 재규 부부는 아이들의 범죄를 처리할 방안을 의논한다. 재완은 “그냥 묻고 가자”는 생각인 반면, 재규는 시호를 자수시키려고까지 하면서 평소처럼 정직하고 올바른 인간의 면모를 보인다. 그런데 형제의 결정이 정반대로 바뀌면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재완의 탁월한 변호 덕분에 법망을 잘 빠져나온 형철은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나 연민을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혜윤과 시호 역시 잘못을 깊이 반성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어차피 노숙자는 오래 살지 못한다”며 자신들의 범죄를 합리화한다. 재완은 이대로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게 되면 아이들이 결국 형철 같은 파렴치한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자수를 시키기로 결심한다. 이 대목에서 영화의 반전이 벌어진다. 매사에 공정하고 정의로웠던 재규가 뜻밖에도 형의 결정에 미친 듯이 반대하고 나선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자”며 그럴듯한 논리로 설득해도 재완이 결심을 바꾸지 않자, 재규는 정신이 나갔는지 재완을 차로 받아버린다. 예상하지 못한 재규의 급발진에 깜짝 놀란 사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재규는 왜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저지른 것일까? 치매 걸린 어머니는 재규 부부와 살면서도 재완만 찾는다. 형제의 아버지는 재규에게 폭력적이었던 것 같다. 이러한 설정에서 그들의 부모가 형에게 애정과 관심과 기대를 쏟아붓고, 동생은 소홀히 대한 건 아닌지 추측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재규는 어려서부터 재완에게 심한 열등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재규는 그런 감정을 꾹꾹 누르면서 ‘착한 아이’가 되어 부모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나는 형보다 착한 인간’이라고 치부하며, 재완에게 우월감을 가지려 했을 것이다.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는 게 힘에 부치면서도 요양원에 보내자는 재완의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효성이 지극해서가 아니라 ‘착한 아들’로 보이고 싶어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재규가 약자에게 선행을 베풀고 환자를 위하는 훌륭한 의사라는 정체성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고 할 수 있다. 재규 부부가 재완 부부에게 시기심을 드러내는 장면은 이러한 해석의 근거가 된다. 결국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재완이 훨씬 솔직한 인간이고, 자신의 욕망을 억압한 재규가 정말 위선적인 인간이라는 얘기다. 결국 아이의 자수 문제를 놓고 재완과 의견 충돌을 벌이는 과정에서 재규가 억압해 온 복잡한 분노가 폭발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영화의 내러티브가 이러한 점에 좀더 집중해서 전개되었다면 재규의 폭주가 좀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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