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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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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이 한창인 17세기 덴마크의 어느 마을. 젊은 안느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장성한 아들까지 둔 목사 압살론과 결혼했다. 한편, 남편이 마녀재판을 주도함에도 안느는 마녀로 몰린 노파 마르테를 숨겨 준다. 안느의 모친에 대해 알던 마르테는 안느에게 어머니에 대해 알려 준다. 때마침 압살론의 아들 마르틴이 집에 돌아오고, 안느는 또래인 마르틴을 사랑하게 된다. 노르웨이의 희곡을 각색한 작품으로, 인물들 간의 팽팽한 심리적 긴장감이 돋보이는 걸작. 신앙과 미신, 종교적 편협에 관한 주제 때문에 나치의 박해에 대한 비판으로 읽어내기도 한다.
ⓒA/S Palladium(Denmark) / 필름제공: British Film Institute(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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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드레이어(Carl Dreyer)
덴마크의 거장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는 덴마크인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서출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드레이어’라는 코펜하겐에 거주하는 일가의 손에 의해 길러졌다.드레이어에 관한 첫번째 전기는 생모가 낙태를 시도했다는 일화를 전해준다. 그러나 그가 비극적인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열여덟살이 되었을 때다. 이러한 체험과 관련한 정신분석학적인 연구는 드레이어 영화의 한가지 비밀을 들려준다. 그의 영화마다 매번 ‘희생양으로써의 여인’이 등장하며 그것은 드레이어 어머니의 이미지의 변형이라는 것이다. 고난과 순교는 여인을 신성화하기 위한 예정된 서사이며, 드레이어의 관심사는 악에 의한 인간의 변화이다.일찍이 사색과 명상이 많던 드레이어는 저널리스트로 출발했다. 영화와 연극에 관한 논평을 쓰며 영화에 입문하였다. 그가 좀더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1912년 노르디스크영화사에서 자막 작업일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후 데뷔작인 <의장 The President> (1919)을 연출하기까지 편집과 대본 집필 등 다양한 일에 종사하였다. 칼 에필 프란조스의 소설을 각색한 <의장>은 단순하고 밋밋한 내용이었다. 표현방식도 소설과 연극을 뒤섞어 놓은 듯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심리적인 것을 강조하는 그의 성향은 잘 드러난다.두번째 작품인 <악마의 명부 Leaves from Satan’s Book>(1920) 역시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을 통해 덴마크영화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끌었다. 4부분으로 나뉜 <악마의 명부>는 역사적인 큰 사건들을 다룬다. 마치 그리피스의 <편협 Intolerance> (1916)을 연상시키는 듯한 거대한 서사 구조는 유사성이 많다. 하지만 드레이어는 그리피스가 아니었다. 그가 관심을 갖은 영역은 종교와 구원에 관한 문제였다.1920년대 후반에 나온 영화사에 남긴 걸작들은, 모두 구원의 테마와 관련을 맺는다. <잔다르크의 수난 The Passion of Joan of Arc>(1928) <흡혈귀 Vampyr>(1932) <분노의 날 Day of Warth> (1943) <오뎃트 Ordet>(1954) <게르트루트 Gertrud>(1964)는 모두 엄격한 드레이어의 고유한 스타일 속에서 인간 구원의 문제를 다룬다. 드레이어적 공간이라고 불릴 만한 강박적이고, 답답한 지속의 공간은 루터파인 그의 종교적 성향을 대변함과 동시에 드레이어가 바라보는 세계의 의미다. 특히 온통 클로즈업만으로 구성된 <잔다르크의 수난>은 인물의 시선을 화면 위에 두고, 거의 감지할 수 없는 정지된 카메라에 의해 신을 향한 인간의 신념을 극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영화적 공간의 의미를 그 어떤 아방가르드 영화감독들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자신에게 맞는 주제적인 공간으로 변형시키는 힘이 있었다.그러나 그의 작품들이 천편일률적인 구원을 이야기하거나 엇비슷한 서사 구조를 지닌 것은 아니었다. <흡혈귀>와 같은 작품은 드레이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는 독특한 뱀파이어리즘을 양산한다. 그것은 내용 측면에서라기보다는 편집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불명확한 시점 쇼트를 사용함으로써 불안과 초조를 야기시킨다. 이러한 모호한 시점 쇼트는 이후의 공포영화들이 창조적으로 변용하여 자주 사용한다.사실 다분히 이분법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주제들(세속/구원, 남/여, 공포/열정)은 사건을 끌어가기 위한 도식적인 형태라기보다는 의미를 명확히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는 생각과 영화적 스타일을 일치시키는 감독이었다. “영혼은 스타일 속에서 드러난다. 스타일은 예술가 자신의 소재를 바라보는 방법의 표현이다.” 회화적이면서도 몽환적인 그의 영화적 스타일은 이러한 태도에서 기인한다.비록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이후 덴마크 영화산업은 이렇다할 인재를 보여주지 못했지만(최근에 라스 폰 트리에의 등장 정도) 영혼의 승리를 담지하는 그의 카메라는 이후 수많은 영화 작가들의 영감이 되었다. 장 뤽 고다르조차 <비브 르 사비>에서 <잔 다르크의 수난>에 등장하는 클로즈업 화면을 보여준다. 물론 고다르 영화 속에서 비추어졌을 때는 영혼의 샘보다는 자본주의에 찌든 한 여인의 초상으로 변모하였지만 말이다.포토+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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