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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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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동네가 사라져가는 세상 속에서2024-06-28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컷 이미지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동네가 사라져가는 세상 속에서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인천의 원도심, 중구의 재개발과 도시 재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는 서사가 있는 영화는 아니다. 즉 어떤 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의 영화가 아니라는 뜻이다. 대신 인천 원도심이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재개발과 도시 재생에 대한 의견에 집중한다. 인간보다는 공간에 집중하고, 서사보다는 인천을 둘러싼 재개발과 도시 재생, 두 개념에 대한 충돌의 양상에 대해 우리에게 친절히 알려주는 영화다.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컷 이미지2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인천의 재개발을 앞둔 철거 직전의 동네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부두 내항의 풍경을 보여주는 부분이 첫 번째다. 그곳에서는 우리가 익히 보아온 전면재개발, 즉 철거 이후 완전히 새로운 것을 짓는 방식의 재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결과물의 대부분은 아파트다. 그것은 그곳의 모든 흔적을 지워버린다. 그곳만의 고유한 개성이나 정서가 사라지고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만 남는다. 이런 방식에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도시 재생인데, 영화의 두 번째 부분은 일본의 쿠라시키와 오노미치로 장소를 옮겨 도시 재생의 훌륭한 사례를 보여준다. 빈집들이 방치된 동네. 그 빈집들을 개보수하여 다시 사람들을 살게 하는 것이다. 그 결과 동네 고유의 분위기와 정서가 되살아나고, 그곳은 관광 명소로 거듭난다. 세 번째 부분에서는 인천 여기저기서 도시 재생에 힘쓰는 사람들이 재탄생시킨 공간들을 보여준다. 한옥, 얼음 창고, 소금 창고, 양조장과 같이 오랜 과거에 지어진 건축물들이 그 모양을 크게 바꾸지 않고서도 갤러리, 카페, 공연장 같은 문화공간으로 바뀐 모습을 통해 영화는 재개발 외에도 인천의 공간을 재활성할 방법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컷 이미지3


따로 섭외한 나레이터를 통해서, 혹은 감독이 직접 해설자가 되어서 나레이션으로 영화의 주제를 설명하는 방식의 다큐멘터리도 있다.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를 연출한 조은성 감독은 재개발보다는 도시 재생의 편에 서 있는 게 명확해 보이지만 영화에 자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저 공간을 카메라로 담고 그 공간에 할 말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영화에 필요한 정보들은 자막을 통해서 간략하게 설명한다. 영화는 인천과 일본을 오가며 많은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아내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도시와 동네와 집의 의미, 재개발과 도시 재생에 대한 개념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리고 각자 나름대로의 질문을 통해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과연 재개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 방식은 옳은 것인가? 도시 재생의 방식에 어려움은 없는가? 등등. 이 영화는 도시 재생에 대한 훌륭한 교육 자료이면서, 재개발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완곡한 설득이자 항의이기도 하다.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컷 이미지4


일본 쿠라시키의 건축가 나라무라 토오루는 “오래된 것을 수리하고 활용하고 연결하기 위해서는 살고 있는 주민들이 그것을 이해하고 즐겨야 합니다. 주민들이 좋은 마을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장인정신을 가진 건축가의 이상입니다.”라고 말했다. 좋은 마을. 그 마을을 위해서는 공간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 영화는 그것을 계속해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땅은 곧 부동산이고, 그것을 개발하여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이쪽으로만 너무 쏠려있다. 그 결과 동네의 역사도 추억도 이야기도 모두 사라지고 그 자리엔 이 곳이든 저 곳이든 어디에나 흔한 아파트만 남게 되는 것이다. 조은성 감독이 재개발은 무조건 나쁘고 도시 재생이 무조건 옳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도시 재생에 따르는 어려움도 영화 속에서 같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만 재개발 일변도의 도시 개발 방식에 균형이 필요하다는 주제 의식은 명확하게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도 그렇고, 영화 밖에서도 우리는 동네가 사라져가는 세상을 보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아주 오래된 미래도시> 스틸컷 이미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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