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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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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더 납작 엎드릴게요>: 절마저 속세라니2024-07-23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컷 이미지



<더 납작 엎드릴게요>: 절마저 속세라니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회사원의 애환을 다룬 ‘오피스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영화의 배경이 되는 회사가 바로 ‘절’이라는 점이다. 한국인에게 절은 친숙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많은 불교 신자들이 각자의 가족과 본인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곳이며, 종교불문 누구나 갈 수 있는 관광 명소이자, 정신적 휴식을 위한 일종의 공원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절이 직장이라면 어떨까.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컷 이미지2


영화의 원작은 헤이송 작가가 쓴 에세이 <더 납작 엎드릴게요>다. 원작자가 직접 원작을 영화의 시나리오로 각색했다. 법당 옆 출판사에 근무하는 막내 직원 혜인(김연교 배우)의 고달픈 직장 생활을 다섯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야기 대신, 에피소드 형식을 통해서 절에서 일한다는 것과 출판사에서 일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원작이 에세이이기 때문에 영화에서도 주인공 혜인의 속내가 나레이션을 통해 전달된다. 마치 직장인의 일기장을 보는 것 같다.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컷 이미지3


영화는 절 또한 다른 직장처럼 고달프고 힘든 곳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그곳이 절이기 때문에 다른 직장에는 없는 고달픔이 따로 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법당에서 직원들이 모여 예불을 드려야 하고, 구내식당에선 콩나물이 들어간 밥만 먹어야 한다. 인자해 보이는 주지스님도 혜인에겐 그저 권력을 행사해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직장 상사일뿐이다. 영화는 혜인의 곤경을 마냥 비극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코미디의 요소를 적극 사용해서 직장이라는 부조리한 공간에 대한 풍자와,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법한 ‘웃픈’ 감정을 이끌어낸다. 주인공의 환상을 보여주는 극중극 장면들이 세 번 나오는데,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귀엽고 말랑말랑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컷 이미지4


직장은 왜 힘든 곳인가. 돈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하며 생기는 의견 충돌과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혜인의 직장 상사들을 은근한 빌런으로 묘사하고 있다. 출판사의 대장인 윤 팀장(장리우 배우)과 김 대리(손예원 배우)는 악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점심 메뉴를 고를 때마다 그렇게 까탈스러울 수가 없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싫다고 하면서 왜 혜인에게 메뉴를 골라달라고 시키는 것인가. 배달음식으로 점심을 시켰는데 귀신같이 알고 와서 그걸 뺏어먹는 안 과장(임호준 배우)도 대단한 밉상이다. 이들을 능가하는 진짜 빌런이 있었으니 중년 여성 신도인 연화수(김금순 배우)다. 그녀는 출판사에 불교 서적 배송을 주문해놓고 입금을 하지 않았는데 책부터 보내달라며 생떼를 부려 혜인을 곤란하게 만든다. 그리고 절에서 출간하는 소식지 ‘법 향기’에 원고 투고 기한을 넘겼는데도 자신의 글을 실어달라고 떼를 쓰고, 엉망인 글을 혜인이 직접 교정과 수정을 거쳐 고쳐놨더니 왜 자신의 글에 손을 댔느냐며 화를 낸다. 뉴스에서 볼 법한 진상 손님, 블랙 컨슈머인 것이다. ‘내가 이 절에 낸 돈이 얼만데’ 이 논리로 이 갑질이 성립되는 것이다.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컷 이미지5


<더 납작 엎드릴게요>는 불교계를 비판하고자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다. 다만 절마저 속세가 되어버린 현실을 개탄할 따름이다. 그것은 절의 문제가 아니고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의 문제다. 절이라는 곳마저도 자본과 권력과 따라 강자와 약자가 나뉘고 약자가 영화의 제목처럼 더 납작 엎드려야만 하는 현실을 슬퍼하는 것이다. 속세는 속세고 절은 절이어야 하는데 절마저 속세라니, 그럼 불성은 어디서 찾을 것이며 가엾은 중생은 어쩔 것인가.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컷 이미지6


글을 마무리하며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의 독립영화들을 관심 있게 봐온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기억에 남을 배우들이 이 영화 속에 있기 때문이다. <고갈>의 장리우, <은미>의 손예원, <벗어날 탈>의 임호준 배우는 물론이고, <정순>, <울산의 별>의 김금순 배우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무엇보다 피곤한 직장 생활로 기가 쭉쭉 빨려만 가는 청춘을 연기한 주인공, 혜인 역의 김연교 배우의 무해하고도 가여운 얼굴이 오래 생각날 것 같다. 김연교는 실제로 에세이를 출판한 작가이기도 한데, 그래서인지 작가 지망생인 출판사 직원 역할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 배우들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영화 <더 납작 엎드릴게요> 스틸컷 이미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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