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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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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운 시선은 영화의 전당과 부산국제영화제의 협업으로 탄생한 '시민평론단'에게
영화에 관한 자유로운 비평글을 기고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인데요.
부산 시민들이 영화 비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활발한 문화적
담론을 형성하고자 합니다. 매월 개봉하는 대중영화와 한국독립영화를 바탕으로 게시되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다채로운 관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문경>: 맑고 선한 기운 그 자체2024-09-05
영화 <문경> 스틸컷 이미지



<문경>: 맑고 선한 기운 그 자체


김현진 (부산국제영화제 시민평론단)



“문경 님이 문경에 오셨네요.” 영화 속 대사처럼, 영화 <문경>은 주인공 문경이 경북 문경시에 와서 겪은 일들에 대한 영화다. 혼란을 막기 위해 주인공을 칭하는 이름은 ‘문경’으로, 지명은 ‘문경시’로, 영화 제목은 ‘<문경>’으로 통일해서 표기함을 미리 알린다.


영화 <문경> 스틸컷 이미지2


문경(류아벨 배우)은 전시회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부하 직원인 계약직 사원 초월(채서안 배우)은 너무나 일을 잘하고 문경을 잘 따르지만, 문경은 초월의 정규직 전환을 이뤄줄 수가 없다. 누군가를 내보내야 회사 조직이 유지된다는 가혹한 논리 때문이다. 초월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회사 생활에 대한 염증으로 문경은 휴가를 내고, 초월의 고향 문경시로 떠난다. 초월이 퇴사하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문경시에 도착한 문경은 우연히 떠돌이 개 ‘길순’을 구하게 되고, 그때 만난 비구니 초년생 명지 스님(조재경 배우)과 함께 길순의 주인을 찾기 위해 문경시 여기저기를 동행하게 된다.


영화 <문경> 스틸컷 이미지3


<문경>은 맑고 선한 기운의 영화다. 오피스 드라마 같은 영화 초반 30분의 갑갑하고 어두운 기운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선의를 가진 인물들의 친절하고 살가운 말과 행동들, 문경시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주는 휴식 같은 편안함이 영화 내내 이어진다. 어떤 장면에서는 혹시 이 영화가 문경시의 관광 홍보 영화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연의 아름다움이 짙게 담겨 있다. 경북 방언을 바탕으로 강원도 방언에서 들을 수 있는 ‘~했드래여’하는 그 억양이 섞여있는 문경시 특유의 사투리도 재미난 요소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마냥 문경시의 아름다움과 한가한 휴식에만 빠져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만큼 인물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경은 과거에 자신의 여동생을 잃었다. 그녀가 초월에게 유독 더 마음을 쓴 이유 중에는 그것도 있을 것이다. 명지 스님은 가은이란 이름의 학생이었지만 사회적 재난의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후 친구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꼈고, 자살 시도까지 했던 번뇌 끝에 출가했다. 두 사람이 길순의 주인을 찾다가 만나게 되는 할머니(최수민 배우)는 집을 나간 반려견과 방 안에만 틀어박힌 손녀 유랑이 걱정이다. 유랑(김주아 배우)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학교 폭력을 당한 이후 세상과의 소통을 차단한다.


영화 <문경> 스틸컷 이미지4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갈등, 반려동물에 대한 학대, 사회적 참사, 학교 폭력 문제까지 <문경>은 사회의 많은 아픔들을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서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이 제시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람들 사이의 관심과 애정, 선의와 친절만이 각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다정한 눈빛을 나누며 함께 하는 식사 속 살가운 대화들, 맑은 냇물에 발을 담그고 푸른 숲 속 고운 흙길을 맨발로 걷는 일 등등. <문경>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맑고 선한 기운이다. 독립영화계에서 20년 넘게 있으면서 6편의 장편영화를 만든 신동일 감독은 베테랑답게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잔잔하면서도 힘을 잃지 않는 작품으로 <문경>을 완성해냈다.


영화 <문경> 스틸컷 이미지5, 6


조력자들인 배우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독립영화계와 TV 드라마를 오가며 존재감을 서서히 알리고 있는 배우 류아벨은 힘을 뺀 채로 주인공 문경을 안정적으로 연기한다. 채서안은 비정규직의 설움을 꾹꾹 참다가 토해내는 초월의 안쓰러움을 잘 표현해냈다. <성적표의 김민영>의 주인공 정희를 연기한 김주아는 <문경>에서 학교 폭력의 피해자인 유랑으로 출연해 짧은 출연 분량에도 불구하고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들어낸다. 마지막으로 특히 더 주목할 만한 신인 배우 두 사람을 더 말해야겠다. 조재경은 겉보기엔 평온해 보이지만 마음 속 깊이 가은의 번뇌를 안고 살아야 하는 명지 스님을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긴다. 50년 넘는 경력의 베테랑 성우인 최수민 배우는 영화 후반에 등장해서 문경과 명지 스님, 손녀 유랑을 하나로 이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생소한 문경 사투리를 어색하지 않게 소화하며 신인 영화배우다운 풋풋함을 보여준다. 이 배우들의 앞날을 응원한다.


영화 <문경> 스틸컷 이미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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