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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한 카메라의 힘2024-06-24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이미지



정직한 카메라의 힘


이시현 2023 영화의전당 영화평론대상 수상자


 몇 년 전 넷플릭스에서 <나의 문어 선생님>이라는 다소 기괴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겸 박물학자가 바다 속의 한 문어와 교감하며 친구가 되는 내용이었는데, 나로서는 감독이 현재 촬영하고 있는 문어가 어제의 그 문어가 맞을지부터 의문이었다. 애초에 사람과 사람 사이의 완전한 이해가 가능한지에 대해서조차 철학적 논쟁이 있는데, 의식 구조가 우리와 총체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는 두족류와 인간이 서로를 이해할 가능성은 더 희박하지 않겠는가.  <문어 선생님>의 감독은 촬영과 편집의 기교에 근거해 자신이 문어와 교감할 수 있다 주장했으나 나는 이는 자기기만을 넘어 관객을 기만하는 처사라 생각했다. 동물과 인간은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지니고 있는 만큼 서로의 언어가 번역되고 이해될 공통의 기반조차 부재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자가 말할 수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우리는 동물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생츄어리>는 이 자명하지만 다소 안타까운 명제로부터 시작하는 영화다.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이미지2


 <생츄어리>는 동물원을 야생동물 보호소인 ‘생츄어리’로 바꾸려는 동물복지 활동가들 및 그들이 돌보는 동물의 이야기를 다룬다. 사람에게 투자할 복지 예산조차 한정되어 있는 현실에서 동물 복지에 배정된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며 활동가들의 선택지 역시 한정되어 있다. 그들은 열악한 환경의 동물들에게 더 나은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상처입은 야생동물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동물들은 회복에 실패하며 활동가들은 이 고통받는 생명체의 안락사 여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부상이 악화되며 고통만 극심해질 동물의 복지를 위해서는 안락사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죽기 직전까지도 밥을 먹으며 삶의 의지를 비추는 동물들이 있는 만큼 활동가들은 무엇이 그들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 확신할 수 없다.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이미지 3


 어떤 동물은 고통 속에서 울부짖고 어떤 동물은 힘을 잃은 채 침묵을 유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울부짖음과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의 울부짖음과 침묵은 더 살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할 수도, 이제 이 고통스러운 삶을 견딜 수 없다는 호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생츄어리>의 카메라는 동물의 마음을 섣불리 추측하는 대신 자신들이 동물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활동가들에게 주목한다. 10년 넘게 돌본 곰, ‘만순이’가 척추를 다쳐 고통에 괴로워하자 활동가들은 안락사와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수술 중 전자를 선택한다. ‘만순이’에게 주사를 놓기 전 활동가는 “잠시 코로나로 갇혀 있던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이제야 조금은 너희들을 이해했을지 모른다”며 항상 ‘만순이’를 돌봤던 자신들 역시 결국 ‘만순이’의 심정을 알 수 없었음을 고백한다. <생츄어리>는 이 모든 장면을 건조하게 제시하지만 ‘만순이’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는 떨리는 목소리는 활동가들의 고뇌와 슬픔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생츄어리>는 관객들에게 동물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건 오직 다른 사람뿐이라고, 활동가들의 고민에 함께 해달라고 호소한다.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이미지 4


 감독이 현실을 편의적으로 재구성해 주어진 문제 상황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단언할 때 다큐멘터리는 프로파간다가 된다. 문제상황은 복잡하며 많은 경우 우리는 무엇이 진정한 문제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동물원에서 비교적 더 나은 삶을 사는 듯한 동물들은 인간에게 노출되며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지만, 악의를 가진 채 동물들의 이동 지역에 독극물을 살포하는 인간이 있는 이상 야생으로의 방사는 그다지 매력적인 대안이 아니다. <생츄어리>의 감독은 이 모든 한계들을 인정한 채 ‘지금 여기’의 상황에 대해 정직하게 증언한다. 그렇기에 나는 <생츄어리>를 다 보고 나서도 여전히 무엇이 동물들을 위한 최선인지 모른다. 나는 그저 죽은 ‘만순이’를 추모하고 눈물 흘리는 활동가들의 심정만을 짐작하며, 그들이 현실적 문제에 봉착해 그들이 생각하는 최선의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순간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


영화 <생츄어리> 스틸컷 이미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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